정추(丁酉)년 여름, 내 동생들(증연과 증기)이 소재(秀才) 시험을 치렀고, 내 보고서가 취소된 후 나는 남쪽으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류후촌, 진룡천, 주방천, 정소남 4인의 작품집 뒤에 쓴 글
우어(자허)가 관상인을 배웅하고 펑추성(자오순)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며 지은 시, 그의 운율에 맞춘
서(상지)의 부채 앞면에 그려진 고양이
소변월도
진남서우의 매화 그림 병풍
관씨 수정자
양류이절구
서호에서 가을 낙엽을 파는 시
우 선생(익봉)을 추모하며
단도왕(예)이 강을 건너 찾아와 곡강정도를 그려 달라고 요청하다
장모의 가을밤 독서도
귀(모의)의 '매화 소영'
심사대령(타오)이 존푸에게 제목을 요청하고, 존푸가 문을 닫고 시구를 구상하는 그림
임춘각 벽연, 진장(문서)을 위해 지음
오영원 연추 제2집에 실린 '칠희 권소지' 판본 후기에
방정운관
우 사수재(가호)에게 바치는 '광한추' 악부
회청공이 산중에서 염실을 간략히 기록함
금릉으로 가는 길에 진해원(陳解元)이 쓴 '운거이강(芸居乙稾)'을 진(裴之)에게 보내 항저우의 가을 시험에 응시하도록 보냈다.
이장(복)의 새 집을 방문하다
검점실에서 밤새 앉아 쓴 글, 흠정(陳正)의 서체를 본뜬 것
황주정(피열)의 '월명추사도'
명나라의 손작(孫作)이 지은 『동가자능서(東家子能書)』 12편에 대해 송나라의 경염(景廉)이 서문을 썼는데, 이를 크게 칭송했다. 나는 그동안 그의 『창라집(滄螺集)』에 실린 시만 감상했을 뿐, 이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에 황 주정(黃主政)에게 편지를 보내 이 책을 구해 읽어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메이년 초여름, 수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왕산(자루) 씨를 만났습니다.
천(페이즈)을 위해 부채에 쓴 글
진링체(치첸)는 당나라 시인 교란의 시 제목을 따서 정자의 이름을 '봉화'라고 짓고, 제 시를 읊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단도왕(옥)강정 시론도
조송설이 연을 닦아 심사에게 헌정하며, 이 연은 예전에 진가릉 선생 댁에 소장되었던 것임
신사 오흥군재에서 달을 감상하는 두 번째 그림
심사재의 술자리에서 시를 읊는 그림
오영원 연추 제3집, 진장(문서)의 '추설어장도'에 쓴 글
'청천도'를 그려 의학자 이 씨에게 선물함
전협리대령(부평) – 「서호추양」 시를 보고 이에 화답하여 신(전귀)에게 바침
양칠(도생)이 자오중에서 와서 아버지를 모시고 경사로 향하던 중, 출발 전날 밤 추영당에 앉아 오랫동안 거문고를 탔는데, 이는 이별의 정을 담은 것이었기에, '서호 이별도'라는 제목을 붙여 그에게 선물하며 길을 떠나게 했다.
한 이장(崶)에게 바침
도왕 장(이순)이 원아당집 뒤에 쓴 글
가뭄을 염려하다
그림에 제목을 붙여 육(원문)에게 선물함
할아버지께서 하사하신 귀중한 책을 정중히 감상합니다
좌봉치정
매화 그림에 관하여
제5권 고금체시
공가성에서 아양까지
조하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구부융(안)을 만나 매화를 보았다
신성현 다카하시 미츠타카 숭녕사
임성역에서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노새를 찾아 60리 길을 가다 남사강에서 하룻밤을 묵다
저녁에 도장(垛荘)에 머물며 홀로 마당을 거닐며 심취하다
홍화부 여관에서 석타 스님의 훼손된 그림을 감상하다
팡구장, 눈 내리는 가운데 말을 멈추고 숙소를 물었다
탄상집 허육(내보)의 편저
철공(보)이 남원(南園)에서 연회를 열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주색 등나무 꽃 모양의 경단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반 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곁들여 식탁을 차렸는데, 그 풍미가 참으로 일품이었다.
바오장(계성)이 우(송량), 하(보찬), 장(인)을 불러 서당에서 내일 함께 술자리를 갖기로 했으나, 나는 절에서 꽃구경을 하기로 약속이 있어 가지 못했다.
부성(阜城)의 유령교(劉伶橋)에서 임추(任邱)로 가는 길에서 즉흥적으로 지은 시
태안 여관에서 슈란산(춘)과 궤비성(창)을 방문하여 대접받은 음식과 등불,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가볍게 술을 마셨다.
시험에 낙방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 편수(국화)에게 작시하여 작별을 고하고 감사를 표하는 시 한 편
조유지재 감구서벽
조정하(조)가 지은 소하산 서당은 원래 진나라의 시중 카이가 책을 읽던 곳이었다.
경진년 여름, 경성에서 돌아와 성 서쪽의 오영원에서 다시 모임을 가졌으며, 연추 동생을 위해 첫 번째 시집을 지어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당나라 이후의 시에 대해 논했다.
반허(감)
진(페이즈)이 먼 여행을 앞두고 제자들을 모아 광천 서실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류궁보 선생(룽지)께서 보내 주신 정자형 자운 연석. 질감이 청아하고 윤기가 흐르며, 형태는 단정하고 우아하다. 비문에 새겨진 격언은 고인의 경건한 태도를 엿보게 하여, 이에 감사의 시 한 편을 지어 답한다.
예전에 한나라 시대의 장두(帳頭)용 동전 한 개가 있었는데, 모양은 짚대처럼 둥글고 속은 비어 있으며 바닥은 사각형이고 짐승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지에서 나온 듯한 모양으로 네 면 모두 구멍과 점 자국이 있었고, 청록색이 어우러져 있었다. 몇 년 전 경도로 와서 유동년 (희해)가 가져가 버렸다. 리이(鶴鶚)의 저서 『집(集)』을 살펴보니 방설추(方雪疇)가 소장한 경초장(景初帳)의 장두(帳頭) 구리 조각은 크기가 이 것과 다르다. 이 구리 조각은 아마도 유수장(流蘇帳)의 장두를 찾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시를 지어 유동년에게 보내 물으며, 그가 쓴 『고기평(古器評)』과 유사한 저서가 있다면 먼저 내게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한거는 이이재(亦齋)가 방회(方回)의 서체를 본뜬 것
여러 친구들에게 빌린 비석과 판본의 탁본을 두루 살펴보고, 기존 소장본과 대조해 보니 더 나은 것도 있고 다소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모두 살펴본 후 각 비석 뒤에 한 편의 절구를 적어 넣고 돌려주었다.
외할아버지 엄공(영)님께 바치는 그림에 읊은 절구 10수
정관
우선생(익봉)의 '순지당 잡초'와 '초유기정'에 붙인 두 편의 절구
시교산 설상인의 『구승집』 중 문조 시에 대한 논평
그림에 쓴 글
그림에 쓴 글
과시도
그림에 쓴 글
명나라 홍자성이 지은 『고승전』의 제목은 『적광경』이며, 황주정 가문에 소장되어 있다. 빌려 읽은 후 제목을 적음.
독설랑집
송나라의 원결재(袁絜齋)는 이에 따라 자신의 서재를 ‘직(直)’이라 명명했는데,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역시 서재였다. 그러므로 내가 머물던 당 뒤편의 호(霍) 소굴 같은 작은 방의 이름도 ‘재(齋)’였으며, 그 안에는 책상 두 개와 책 몇 권을 겨우 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창리(昌黎)는 “이 방이 어찌 화려하겠는가? 내게는 이미 충분하니, 얻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기증한 분
석연(釋硯)이 유궁보(劉宮保)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집 밖의 바나나나무 잎이 풀려 창문 너머로 살짝 흔들리니, 가랑비가 청량하게 내리는 것을 보고 나가서 물을 주었다. 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이 나무가 서서히 자라 시야를 가리는 일이 다른 식물들에게는 비난받을 일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잘 어울리기에 시를 지어 이를 기렸다.
펑(청휘)이 직접 그린 '묵선'의 작은 초상화
양(문순)은 백벽에서 항저우로 돌아오는 길에 이 시를 지어, 작은 시(西)족 노예를 통해 보냈다.
제6권 고금체시
방초당 소한제 2집, 왕(가록)의 청동선관 서적 비축도를 주제로 한 시. 한시 '예후 가에 책이 많다'의 운을 따름
배를 타고 관문을 나서며 남은 친구들을 만나 연작시를 지음
'배 위의 밤 피리' 연시
피리 소리가 멈추니 달을 보고 다시 감회를 담아 연구를 지음
왕(가록)에게 바침
효청이 운양에 도착하여 소나기를 만났다. 내일 금교(金焦)를 구경하려니, 먼저 시로 왕(가록)에게 약속을 정한다.
경구(京口)에서 배를 타고 지은 장(보령)의 '파루풍우도(破樓風雨圖)'
물때를 기다려 강을 건너며 왕(예)과 녜(헝)에게 보내는 시
경구 소상각
금산에 앉아 강가의 천각에서 시야를 넓히며 다시 탑의 꼭대기에 올라
과평산당
작약
왕(가록)이 나를 양주까지 배웅하고 작별을 고했다
배 위에서 밤에 그린 옌헝(阮亨)의 주호초당(珠湖草堂) 그림
피리를 불며 강을 건너다 중류에서 지음
산행 시 한 편을 진장(문술)에게 보내다
천(전태)과 함께 소원(蘇園)에서 꽃을 감상하고, 평산당(平山堂)에서 시를 지어 양(창서)에게 그림을 부탁하다
서원(西園)에서 우장(鼒)을 찾아가다
진(배지)에게 바침
진장(문술)이 불러 술자리를 마련하자 즉석에서 두 편의 시를 바치다
왕(가록)과 헤어진 뒤 저녁에 소오대(小五臺)에 머물다
여름을 보내는 잡시와 오(자학)
잡서
비운
목련
이(경장)를 관양으로 보내며
칠석
그림 헌정
송딩청은 우리 현 유학원의 정원 뒤편 땅에서 자오허의 비석을 발굴해 내었고, 누군가 시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림에 얹은 시: 신체(新體)로 지은 두 편의 절구
불일
지방(정호)과 심(타오)이 숙소 작은 서재에서 나눈 밤의 대화
가을밤에 동(국화)에게 보내며
목련
비 내리는 밤의 사색
치왕(자루) 주(서)
신오(자학)가 봉초의 게으른 선생에게 보내며, 축수담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지은 시를 곁들임
《충음》
논문을 소(당) 시수에게 보내다
쉰천 선배(홍치)
성(省)에서 야간 당직을 서며 우(자학)의 최근 시를 읽다
채(청루)를 따라 사천으로
작은 뜰에서 대나무를 찾아 심고 나니 화분에 심은 연꽃을 발견하여 무척 기뻤다. 다음 날 우 선배(송량)가 꽃을 보러 축수담으로 놀러 가자고 불러, 우(자학)가 시로 그 운을 맞추어 우 선배(송량)에게 보여주었다.
사거리 꽃시장에서 한가할 때면 늘 우 선배(송량)와 함께 거닐며, 아름다운 대나무와 다양한 꽃을 발견하면 가져와 뜰 한구석에 심곤 했는데, 이를 본보기로 삼았다. 이 일화는 참으로 생각할 만하다.
정월 7일, 한장(崶)이 소한(小涵)의 청죽서재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내가 남쪽으로 떠나려던 참이라 선물로 시 두 편을 지어 구장(蒓)에게도 바쳤다.
귀향 전날, 진 장(용광), 오 선배(송량), 전(의길), 장(상하), 사(계수)가 동(국화)을 불러 청문연재에서 송별시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하다
장(유전)에게 선물할 때, 내가 남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양을 거쳐 인사드린 뒤 이곳에 보내다
비에 갇혀 여관에서 친구를 그리며 지은 시
서점 벽
고양(高陽) 여관에서 지차현령(揆)의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로 드림
만장(승기)의 연회에서 이 글을 쓸 무렵, 나는 그와 함께 남쪽으로 돌아가던 중 강가에 머물며 반나절 동안 술을 마셨다. 떠나려는데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 글을 써서 작별을 고한다.
왕(가록)이 내가 양주를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술을 챙겨와, 녜씨 문선루 아래에서 천(균)과 천 장(문술)을 만나 술을 마셨다.
여여히 오가며 간행물에 실으려 했으나 한 번도 실리지 못하다가, 갑신년 봄에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돌아오다 이곳을 지나며 비로소 여러 정원의 경치를 두루 둘러보았다. 그림 같은 배가 흔들리며 이틀 동안 모두 둘러보았으니, 이를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진장(은복)이 왕(가록), 진(균), 김(용), 진(방태)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
강변에 밤을 보내며 홀로 가는 어선을 보고 약명을 빗대어 지은 시
풍을 피해 과보(瓜步)를 거쳐 취핑주(翠屏洲)로 향하여 왕(豫)을 찾아가 곡강정(曲江亭)에서 시를 논하며 매우 즐거웠으나 비가 내려 돌아왔다
산행 시 한 편, 장제체(章碣體)를 본뜬 것
고향에 돌아온 후 시사회 동료들의 편지를 받고 이에 답장합니다
문천(이치)은 동(국화)에게 축하와 함께 보낸 감찰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갑신년 봄, 경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리포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지음
왕장(궈언)이 소장한 명나라 류완안의 '황마 남순도' 두루마리에 대한 서문
《영선》과 황장(피열)
『소소포도화』 - 삼송당집의 운을 따라 지음
가랑비가 내리는 병상에서의 글: 장(상하), 오(송량), 전(의길), 동(국화)에게 보내는 편지
낚시
'길고 짧음에 정해진 수명이 있어 결국 다하게 된다'를 운으로 삼아 왕(가록)을 추모하는 여덟 편의 시
약에 관하여
오 선배 (송량)이 '철옹시'를 지어 보내며 말하길, "나는 병으로 죽을 뻔했으나 결국 살아남았다. 지금 이 순간 만 가지 인연이 모두 끊어지고 한 가지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 내면을 돌아보며 고요함을 관찰하니 모든 것이 환히 비친다." 이에 그가 거처하는 곳을 '무성애선'이라 명하고, 호를 '철옹'이라 바꾸었다. 옹이 이렇게 말하니, 옹에게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초보적인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흠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미 과장된 것이 될까 두렵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불확실하여 여전히 위험하므로, 시로 그를 일깨워 이것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고, 곧바로 그의 운율을 따랐다.
기문다 공의 한와연시, 양(장거)의 소부
자신의 거처 벽에 직접 쓴 글
약 복용
도쉐희
자탄
복령
작은 서재에 홀로 앉아 활자 새기는 기쁨을 품고, 때때로 관성 동쪽의 작은 암자에 편지를 보내곤 한다
서(상지)에게서 얻은 소영벽석에 대한 감사의 시
제(연회) 매화거사도
가수가 그림의 제목을 요청하다
왕(가복)을 구아주로 보내며 강루 연회 도화 뒤에 쓴 글
위석(동복)의 그림에 쓴 글
『주양 묘비명』을 쓴 후
심(언증)의 '밧줄 침대 경전 책상 그림'
한 장(송)에게 바침
서랍을 뒤지다 보니, 선대부께서 신사년에 봉치원으로 이사하시며 지으신 시를 발견하고, 가슴 아픈 감회에 젖어 원운을 따라 한 수 지어 올립니다.
과래연당에서 외삼촌인 사공(楷)에게 바치는 두 편의 시
우여암 종루가 완공되자 무이 스님이 시를 청하다
제시 링랴오의 『용감한 여인의 시』
사라화 경화 삼송당집의 운을 따름
서실을 따로 지어 문과 창문을 달고 벽에 제목을 적었다
정(광형)에게서 '상죽소창' 여섯 권을 얻어, 이에 이 시로 답하다
칠석집, 견복제관어, 원기집
『선남시회도』 자제
허동(국화)이 라이주 태수를 얻음에 즈음하여 장(응운)에게 보내며, 역성
삼송 백조견화, 선대부가 이주한 것을 보고 시감을 읊으며 원운을 따름
주동시민판 (홍가)
가을날 동생(증영, 증수)과 함께 동전(東軒)에 앉아 심경을 적다
신찬과 황장(피열)
자제 소집 28자
4
표지
뒷표지
제9권 고금체시
정해년 3월 26일 곡우
투(조)은원 소은도
우장(운)의 동창회 시집 뒤에 차운하여 씌운 글
'갑신년 봄, 동료들과 함께 명원을 두루 둘러보며 모란을 감상한 시집' 뒤에 다시 운을 짚어 쓴 글
갑신년 4월, 황 장(피열)이 용수, 적선 등 여러 선원을 함께 방문하기로 약속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장은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도산으로 돌아왔다. 이에 적선사의 승려가 왕백곡에게 보낸 섣달그믐 시 두루마리를 보고 감회에 젖어 이를 적는다.
진(란)월의 밤에 거문고를 찾아가다
중우 도사가 시를 요청합니다.
강(원)의 초상화
한장(崶)과 함께 전원(田園)으로 돌아가 살며 도(陶) 시의 운율을 딴 시 여섯 편
가흥 우(수) 복원도 두루마리에 읊은 시 세 편
광복 허 산인이 그린 '종국도'에 대한 제목을 구함
동지 이틀 뒤, 구가원(瞿家花園)에서 지음
네토가 콴루산의 리 다오시에게 쓴 시적 지침
양(장구)과 함께 겨울날 창랑정에서 유람을 기록한 작품이다. 당시 오백명현사를 수리하고 있었기에, 우리 고향의 펑 선생(샤오셩)이 지은 『측해집』을 선물로 삼아 시를 지었으며, 이에 그 내용을 함께 담았다.
전운으로 쓴 양(장거)에게 바치는 시
고려의 김학사(정희)가 '전시이재' 세 글자를 해외에서 멀리서 장해원(심)에게 부탁하여 보내달라고 하여, 이에 답장을 써 보냈다.
석장(윤)옥의 70세 초상화
사(전희)의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시를 요청했으나, 그는 병이 있어 술을 좋아했기에 이를 타일러 주었다.
장옹의 『애련설』 서문 뒤에
그림에 쓴 글
장장(지안) 승려 숙소 다담도
구(원) 고천정사도
상선(上仙)의 시 한 편, 차원노인(借園老人)을 위해 지음
주(표)에게 바침
꿈에서 얻은 열네 글자를 바탕으로, 꿈속에서 겪은 일들을 이어 이 시를 지었다.
경인년 2월, 야오펑산 농민들과 현령 쉬밍푸(전리), 두 명의 부현령인 위안젠(지준)과 궈유의 요청으로, 그들은 궈 가문의 초당에서 만나 우현의 수리 공사를 논의하고 관개용으로 쿵루오산 아래에 지류를 개통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시를 지어 답했습니다.
봉황지촌 농가에서 30여 일 머물다, 3월 초하루에 법운암으로 거처를 옮기며 수운 장로에게 전하며 여전히 앞의 운율을 따름
우리 가문은 6대 조상인 기위(其蔚) 공의 후손 중 자(兆)를 받은 9개 파에 이르러 계보가 없었고, 자손들의 이름이 흩어져 기록되지 않았으나, 이제 이를 편집하여 한 권으로 엮었으며, 9개 파를 하나로 묶어 당나라 시주(歙州)의 사관(刪史)인 봉시(逢時) 공을 신안(新安)의 시조로 삼아 '대부(大阜) 판씨 지보(支譜)'라 명명하였다. 초고가 대략 완성되어 가문에 보내어 어른께 서문을 부탁드리고 간직하였으니, 기쁨을 기리기 위해 시를 지어 세 번이나 앞의 운을 따랐다.
17일 비를 뚫고 배를 타고 법운암에 이르러 벽에 소릉 동거사와 내가 지은 시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이에 네 번의 운율을 따라 답시를 지었다.
오랜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자, 나는 로운(Law Yun) 사원에서 하룻밤을 묵고 일찍 일어나 유(션탄)와 함께 근처 시골길을 거닐며, 원래의 운율을 따라 시를 지었다.
19일, 파운암에서 보모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디스크 게이트의 배 위에서, 나는 항저우에 계신 외삼촌(시시)께 예의를 표하며, 미리 지어둔 운율을 따랐다.
종시랑(창)이 복건에서 돌아와 경구를 지나며 편지를 보내 근황을 묻고, 이번 여행에 진서산집 한 권만 챙겨 왔다고 전했습니다. 중년이 지나면서 호기심은 점차 사라졌고, 정토 수행에 조금 힘쓰고 있지만 그저 망념을 떨쳐내는 데 그칠 뿐입니다. 제가 이 말을 듣고 꽤 위안이 되어, 문중이 당시에 불교를 논하고 경전을 설파한 취지를 적어 보내며, 함께 탕종보 선생께도 보냅니다. (금조)에게 전하며, 이전 운율을 일곱 번 반복하여 지은 시를 보냈다.
시풍예장 소작농에게 지은 시 여덟 편, 전운을 따름
24일, 옌(송진)의 펑교 법운암과 장계영 선생 사당 두 곳을 둘러보고, 9모의 벼를 심는 것을 보며 앞의 운율을 따름
도광 10년 봄, 흥복당 12리 지점을 준설하여 요봉호라 명명하였다. 호수에는 일곱 개의 다리가 있는데, 바닥이 좁아 무너질 듯하여 수리하여 높이를 높였다. 산은 맑고 강은 아름다워 그 자체로 청승한 풍경을 자랑한다. 요봉 상·중·하향은 예로부터 푸른 빛이 항저우의 삼천주와 견줄 만하다. 또한 호수 양안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 소나무와 대나무를 널리 심어 서호를 본받으려 하였다. 옛날 천태 지자대사가 서호를 방 생지(放生池)로 개명하였으니, 이제 또한 관청에 청하여 어업을 금지하고, 이곳에 도장을 열어 함께 청정함을 닦기를 바랄 뿐, 단지 관개와 배 다닐 편의 이득만을 위한 것이 아님이라. 시로 소원을 읊은 한 편을 지었으니, 앞의 운을 열 번 반복하였다.
3월 22일, 꿈속에서 산탕을 지나다. 이현친왕 사당 옆 홀로 선 고목 아래 오랫동안 머물렀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 풍취가 청아하고 절묘하여 애틋할 따름이었는데, 문득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동남에는 과세를 거듭하지 않고, 서북에는 농토를 넓히니." 마치 나의 친구인 진소운과 사마 배지청의 '회당집'에 실린 말과도 닮아 있어 참으로 기이하다. 장난삼아 신체로 지어 보았으니, 앞의 운을 11번 반복하여 완성하였다.
명나라의 진헌장(陳憲章)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호는 여은거사(如隱居士)라 했다. 그는 시와 그림을 잘 그렸는데, 특히 매화를 잘 그렸다. 어느 날, 빙호도인(冰壺道人) 왕겸(王謙)과 함께 왕십이(汪十二) 외삼촌의 서당을 지나가다가 그가 그린 '가화(嘉禾)' 수 점의 작품을 보게 되어 기뻤다. 이는 올해 벼농사가 풍년일 징조라 여겨, 곧바로 그 그림을 얻었다. 3월 24일, 벼를 심고 농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이 그림을 가져와 둔위호(敦葦湖) 방에 걸어두고 그 위에 시를 지어 적었으니, '십이중전운(十二曡前韻)'이라 한다.
아아, 한 편의 시에 두세 번 전운을 반복하다니
지령(至靈)의 시 한 편, 14행으로 전운을 따름
교교한 한 편, 열다섯 번 전운을 밟음
반조(返照) 한 편, 전운을 16번 반복함
연월방을 지나며 쓴 시, 전운을 17번 반복함
제우(송진) 요봉 호수에서 여러 시에 화답한 뒤, 전운을 따르며 18편을 더 지음
3월 26일 생일을 맞아 우연히 쓴 시, 19행으로 전운을 따름
임옥동(林屋洞)을 여행하고자 한다면 미리 산속 친척에게 소식을 전하여 안내자를 구하라. 옛 사람들이 이 동굴에 대해 남긴 기록을 읽어보면 모두 그곳에 기이한 풍경이 많다고 하는데, 썰매를 타고 횃불을 앞세워 나아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이 시를 지으며 20번이나 앞의 운율을 따랐다.
4월 7일, 임(칙서)이 오중을 지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매우 즐거웠고, 21번이나 앞의 운을 따랐다.
우 선배(송량)가 최근 쌍부용도를 얻었는데, 하나는 이충의공(장경)의 유품이고, 다른 하나는 양후(방)가 군중에서 적을 베던 칼로, 모두 그가 선물한 것이다. 경인년 초여름, 나는 경성에서 나와 간서주(黔西州)의 지사로 부임하던 중 우 선배를 지나쳐 만났고, 그가 시를 지어 달라고 하여 이전의 운율을 따라 스물두 편을 지었다.
『술몽』 한 편, 23번 전운을 밟음
량(장규)이 제목을 편찬하였고, 니윈린이 "호산서실"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서문에서 루쉔쭈오는 학자이자 관료였던 그가 우송으로 돌아올 때, 현령이 우송강 준설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으며, 또한 새로이 고인 사당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서문과 비문이 서로 상응하는 듯하여, 그는 첫 연의 24음절로 이 글을 지었다.
양(장거)이 요청한 '유홍루의 거주지 그림'에 대한 시, 25편으로 앞의 운을 따름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난 뒤 우산인(수)을 그리워하며, 가흥 26년, 앞의 운을 따름
량(장구)의 호산서옥도와 니운린의 자제 운사절구
신장에서 승전 소식을 전하며 기쁨을 담아 보내드립니다. 부모님께, 경성에서
펑(치젠)이 금릉에 머물며 정원과 정자, 나무와 바위의 아름다움을 읊어 이 곳에 싣다
신와(辛呉)년 봄, 풍치원(風池園)에서 지어 장(용경) 선생께 바침
풍선, 장생과 함께 지음
춘우동작
조오(증유)의 초라한 서재에서 소주 한 잔을 나누며 강생에게 보내다
구원의 창랑정도
구(상운) 중류자재도
제10권 고금체 시
병 속의 흰 매화, 장생과 함께 지음
맥주도(麥舟圖)에 대한 글: 양(장거)
석호인의 연회도, 양(장거)이 제목을 붙임
『주산』 한 편
산야간적 상인
폭포를 바라보며 지은 시
산중에 은거하며 둘째 동생(증영)에게
둘째 동생은 장생과 함께 산에 왔다가 초대를 받고 관문을 나갔으나, 다음 날 곧바로 돌아왔다.
독학이수: 두 동생에게
양(장거)을 위해 쓴 '송묘의 작은 배 그림'
제2동생 연탕도
세상이 한 편의 시를 탄식하며, 사촌 동생(준안)이 '경도'를 그린 뒤
둘째 동생과 함께 영유선관(映榆仙館)에 앉아 지음
5월 10일: 시를 짓지 말라는 경고를 담아 형의 책을 둘째 형에게 보냈으며, 그 취지에 따라 이전과 같은 운율로 이 장을 지었다.
비 내리는 날 육씨 서당을 지나며 둘째 동생에게 기쁘게 선물하며 여전히 앞의 운율을 따름
인화고(학순)의 고정 일각루 그림
신묘년 중양절, 둘째 동생이 북쪽으로 떠날 예정이라 이 글을 씁니다
여름날 퇴사루에 앉아 우연히 지어 경사의 전(의길)에게 보낸 시
양(장거)에게 바침
량(장구)이 잠시 귀향하여 시를 구하자, 곧바로 '귀향하는 기러기 그림' 뒤에 제목을 붙여 선물하며
수운 상인의 유초
허(사기)의 '루강 송별도'
서십득자상 후시강생
용띠 해의 동지 이후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스무 글자를 받았습니다.
동(국진)이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기에 시로 그를 추모하며, 그의 형(국화)에게 영창으로 보냄
한(숭)백운 무진도
화 가숙(거석)의 60세 자서시
종제(희부)의 작은 창가 오죽도
꿈을 짚어 쓴 두 편의 절구, 육(아송)과 양(문순)에게 보내며, 아울러 임(칙서)에게 전함
셋째 동생(증수)의 최근 시 중에 '잠시 앉아 고요한 경치를 얻다'라는 다섯 글자가 있는데, 이를 칭찬하는 이가 없자 내가 홀로 이를 뽑아내어 홀로 감상한 바를 기록하고자 시 열두 절을 지었으니, 이는 소부산인의 신체시라 할 만하다.
즉흥시: 사촌 동생(준기 희부)에게
『전운(前雲)』, 동생(증서)과 함께 집필함
한 이장(崶)의 매화 심기 그림 두루마리에 읊은 시 한 편
또한 소장한 주비산의 '은차'에 얹은 한 편의 절구
누구의 집
로만봉서, 『역경』을 읽으며 세 번째 동생에게 보내다
사촌 동생(준기)이 호수에서 채취한 물풀을 선물하며 쓴 28자
초여름, 로만 피크 산장에 동생과 함께 앉아, 동생의 시구를 빌려 이 글을 지었다.
오랜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자, 일찍 일어나 동생과 함께 예전과 같은 운율로 시를 지었다.
치(연회)는 최근 논농사에 안성맞춤이며 두 물길을 논으로 끌어들이는 꿈을 실현해 주는 용꼬리 수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 시를 지었으며, 린(제서)과 천(란)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함께 남겼습니다.
제11권 고금체시
계사년 5월, 산탕의 이현사에 머물며 오 장(운)에게 보내는 글
5월 3일, 이현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즉흥으로 지어 오 장에게 보내다
5일, 이현사에서 지음
5월 12일 밤, 이현사 벽에 남긴 글. 유(송진)와 함께 지음
소부산인의 꿈속 시: 육언육절구
계사년 4월 말, 산탕의 이현사에 13일간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감흥을 얻어 26운의 시를 지어 마을의 어른들께 바치며, 함께 읊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6월 21일, 도하 여관에서 더위를 피하며 도(수)가 수박을 대접하고 운대산 시를 보내온 것에 답하여 두 편의 절구를 지음
칠석에 태산 정상에 머물다 해가 뜨자 일을 시작하다
태산 기행 잡시 20절
도문
경화, 부친의 입각 기념 감사시 원운 두 수
서인본에게 바침
『동남쪽 구석에서』 한 편을 두 동생에게 보내고, 소의 시를 읊어 조카들에게 보낸 한 편의 운율을 따라, 그리고 세 번째 동생에게 우문으로 보낸 시
단목(국호)이 찾아왔으나 답이 없자 지은 시
서(인본)의 최근 시에 대한 해설
둘째 동생이 고향의 여덟 가지 꽃을 직접 그려 두 편의 시를 지어 보았다
딸 윤지를 추모하며
둘째 동생에게
답기수문(곤태) 차원운
남귀시이제
계사년 6월 15일, 상시(侍)를 모시고 북쪽으로 행차하여 경도(京都)에 머물다 37일 만에 출발을 앞두고 아버지께 바치는 글
문상현과 신(전회)의 대련
이른 아침 길을 나서며 뵈는 풍경을 짚어, 심(전계)과 서(인본)와 함께 지은 연시
여행 중 밤에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을 쉰(전계)과 함께 지은 연시
중양절 다음 날, 원강우가 배에 머물며 손(의준)과 가볍게 술을 마시던 중, 우(종준)가 완중에서 와서 만나자마자 곧 떠나버렸다. 이에 심(전귀)의 시집에 실린 '과응두호' 시의 운율을 빌려 연작시를 지어 이 글을 씁니다.
전운답서(인본)
고유(高郵)로 가는 길, 베개 위에서 지은 연시
소보(召伯)의 다이(埭) 구호 연시
회음에서 배를 타고 고유성 외곽에 이르렀으나 물살이 거세고 배에 구멍이 나서 당장 수리할 수 없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함께 지은 시
다음 날에도 여전히 누선(漏舟)을 타고 고유호(高郵湖)를 건너며, 심(전계)의 『집중강음만발시(集中江陰晚發詩)』 운율을 빌려 연작시를 지음
과주 도중 기사를 담은 연시
도중 타인의 집에 머물다
남귀 여행 중 밤에 쓴 상황을 올리며, 부친님께
배 위에서 두 동생을 그리며, 우중(吳中)에 있는 셋째 동생에게 보낸 편지
즉사
과주(瓜洲)의 달밤
한상에서 심(전계)과 옛 이야기를 나누며, 고인인 왕(가록), 진(균), 진(배지)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