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조의
추양소 1
조양서 2
조양소(籌洋疏) 3
조양서(籌洋疏) 4
《조양소 5》
조양서 6
조양소 7
추양소 8
《조양서 9》
급히 화공을 계획하는 상소문
경사본 계소
천초소(推行錢鈔疏)
상소문
상소문
‘증국판을 친차대신으로 임명하여 후베이성을 원정하게 해 달라는 상소’
호남 거인 좌종탕을 추천하는 상소문 (대신 작성)
구 광시 순부 우창수 사적, 사관으로 이관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 (대)
열녀 임장씨의 상소를 상주해 주십시오
해운 쌀 석을 분할하여 여전히 하운으로 귀속시키는 것에 관한 상소
제2권
군영의 문원 임용 남용에 대한 탄원서
'기여금 징수의 악습을 조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상소하는 글'
양회 염정 현장 징세 상소문 및 상소문 부록
왕의 대신들이 법을 집행하지 못함을 탄원하는 상소문
'명령을 받아들여 상벌을 엄격히 집행할 것을 청하는 상소문'
전체 상황을 총괄하는 안후이 성 총독의 상소를 별도로 작성해 주십시오
허난 총독 영귀에게 보내는 보고
우진우 구이성 총독의 탄상
윈난 총독 우진우가 오로지 화해 정책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탄원서
남하 총독 경장의 탐욕과 무능을 탄핵하고, 원갑삼에게 대국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
하도감 경장의 직무 태만을 탄핵하고 하영을 조방으로 변경할 것을 청하는 상소
이것은 동중국 순부(巡撫) 숭은(崇恩)이 황제에게 보낸 서한입니다.
복건성 부장 장영청의 병을 핑계로 사임하는 상소
양강 총독 허궈칭이 증국판을 친차대신 총독으로 임명해 줄 것을 상소함
신설 회양진 장수 엄선 및 병력 훈련에 관한 상소
구시성 포위 해제 상소문
남북 각지에 안후이·후베이 원정군 지원에 관한 상소를 하도록 명하소서
황제의 매화 구경 행차가 부적절하다는 상소문
매화꽃 구경으로 떠나는 황제의 행차에 대한 추가 탄원서
제3권 잡저
주남·초남 해설
시무책 1
시무책 2
시무책 3
서예론 I
『서리론(胥吏論)』 제2편
『서리론』 제2편
관료 회의록
단방 간명 장칙
도산 수비기
형택 대공 공적비
중준의 '초금하비' 대
상화송천 스님이 사나에게 쓴 글
상전 상국사에게 보낸 편지
상두지농 상국에게 보내는 편지
오대령당에게 보낸 편지
대신 소순에게 보낸 편지
복장랑재 군문의 서
장랑재 이장에게 보내는 편지
유산번 임영숙 방백의 서
세중당 문집 서문
허주(許州)의 예연농(葉砚農) 자사(刺史)의 중융평원(重茸平園) 기
제4권 잡저
고중혜전
의사 장계경 전
서상하(署祥河) 동지(同知) 죽림(竹林) 왕군(王君)의 전(傳)
조열부전
후베이 순부 도문절 공의 행적
남양총병 구무열공 행장
광록대부 산수영 수비관 고인 경문부군 묘비명
염운사 겸 운동사 정군 예의의 묘비명
고봉통봉대부 수공 모청 묘비문
경력함 부공생 서이원 공 비명
국자감 전부 원군 묘비명
양주부 장운현 현령 장공자의 묘비명
고봉의 후궁이었던 천수렌의 약력
제5권 시
광문(廣文) 장영선(張詠仙) 선생께 드리는 답시
강풍이 부는 백과보에서 배를 타고 조산으로 향하다
지묘(畱智廟) 벽에 적힌 시구 중 “비록 버드나무라 해도 남쪽 강변이 좋으니, 오직 안개와 물결에 물들 뿐 먼지에는 물들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어, 이를 이어 지었다.
벵 루오아이팅 님
연수(燕水) 길에서 비와 눈 내리는 여인숙에서 지은 감회시
문하
『향남억몽도』는 사로어(謝萝漁)가 편찬한 작품이다
내각이 헌사를 올릴 예정입니다.
고시 두 편
대화
서애
통푸를 남쪽으로 보내며
시 한 편을 지어 왕순경(汪醇)과 정유(廷儒) 태사에게 그림을 청함
역사 시 4편
후영사 육수
애포기
장서정(張述亭)의 수도 행을 배웅하며
야음
애독류
순방처 야간 당직
사몽어(謝夢漁)를 위해 그린 그림에 시를 읊다
가을밤 용수사에서 판보인 시독을 배웅하며 우중으로 돌아가는 길, 세 편
상봉교로행
화초에 얽힌 심경 4수
『추림미구도』는 서음헌과 동년배인 통이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 쓴 글
4월 3일, 예윤신과 공수산 두 사인이 구정림 선생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자인사에서 정화제를 거행하였다.
옥농 형과 구디 여동생을 남쪽으로 보내며
『회루청우도』는 부남초의 작품이다
교행(郊行) 2수
잡시
그림에 쓴 글
장영선·조진 스님의 만송운해당 유묵
성소송 대령의 사천 부임길에 보내며
제목: 남초(南樵)가 반무원(半畝園)에서 시를 짓고 그린 그림을 산좌(山左)로 보내다
주미군께서 선물해 주신 시에 답하며 원운을 따름
그림에 쓴 글
『고산방음도』는 변송신의 저택 비부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제목 앞부분: 동포서원(東坡書園)에 실린 임부(林步)의 시 운율을 따름.
성남화사(城南花寺)에서 주백한 선배의 수도 행을 배웅하며 지은 시 네 편
『주규당 즉사』 3수
조선 이순선(李蕅)의 '춘명화우도(春明話雨圖)'에 대한 글
『리리농의 눈 내리는 밤 귀향도』에 씌운 글
이신포가 강우로 군에 따라가자, 전사령의 행영에 보내다
공연에서 왕자 옌과 사마를 그리며
달을 바라보며
『교서노옥도』는 예윤천 관제가 그린 작품이다
양팅루와 함께 시험에 떨어지고 수도로 떠나는 동창을 보내며 (2편)
공작부(工部)가 산시성 북부 지역으로 부임하는 저명한 관리 고천(高辰)에게 바치는 '위펑(魏鵬)이 랑저우(陝州) 기록 담당 군사 보좌관에게 보낸 시'를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가을의 감상을 담은 여섯 편의 시
왕인추, 고벽매, 채여순이 보내준 글에 대한 답
펑린, 이시강, 구이펀, 덩웨이 산루의 저서 도록
린잉슈는 한 연회에서 제비를 뽑아 '전(Zhan)'이라는 글자를 얻자마자, 서산에 대한 시 뒤에 이를 즉시 적었습니다.
숙청회원에서 판보인 학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청룡교를 건너 금산구로
제6권 시
와불사
산을 올라 대비사에 이르러 말을 내리고 걸어서 용왕당에 도착했다
취미산방에서 달을 바라보며
왕인추를 산좌 중셴 막부로 보내며
희설과 정해, 가을에 홀로 용수사를 찾아 두 편의 시를 지음
이주봉 태수에게 바치는 한겨울을 이겨내는 글
'영회' 두 편
별시 오수
시독(侍讀) 공수산(Kong Shoushan)은 한재(Hán Zāi) 운율을 정하고 '휘(輝)'라는 글자를 지은 뒤, 한국인 이주렌(Li Juren)을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승려 이선(Li Xuan)에게도 예물을 바쳤다.
유파 제벽 2수
예중회고
독사사수
우연히 지음
밤에 앉아
금루에서 머물며 수도의 옛 친구를 그리다 (2편)
독사사수
윤 8월 15일, 진중현(陳仲軒) 대수, 주소의(鄒少儀), 구소한(裘少韓), 요운핑(姚雲屏), 진채암(秦採巖) 대령과 함께 이궐(伊闕)을 여행하며 석굴사와 절을 둘러보았다.
향산사
용문월야방가
주석 군에게 선물하며, 그의 시집에 있는 '주' 자 운을 따름
회선사에서 량(亮)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영태사
소림사
송산운 서문
낙천 입성
『진수현 사마 남유 일기』 권에 대한 서문
수회 4수
수년 동안
소상교에서 양장군의 재기를 기원하며
잉강과 루강 사이에는 수로가 교차하여, 가을 물이 차오를 때면 마치 호숫가 풍경과도 같다.
장향타우 태사에게 선물하며, 곧바로 그가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복학사(Fuxue Temple)로 여행을 계획하려면 서둘러 먼저 가보세요.
봄날 풍혈산을 유람하며, '온기'의 운을 딴 시로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현이 지핑에서 정오에 만보, 경부, 자산, 영과 함께 천씨 가문의 정자에서 '청명강경' 그림과 '유풍동' 산수시를 감상했다.
하·산·여 지역을 순시하던 도중, 원남 대영의 여러 분들께 보내 드리는 시 네 편
동료 학자 강마이성에게 보내는 산시성 부사에게
상엽희
정도남(程道南) 대령의 광보(光溥)가 선계(循陔)와 함께 난초를 채집하는 그림에 대한 글
펑몐우 동년생의 유고를 기리며
진장군행
허창의 연말에 넋을 잃고
서평도중
봄날 스님과의 여행에서 느낀 점
《종군행》
맥생융이 춘야에 여평원과의 약속을 지키러 갔다가 시 한 편을 지음
평원(平園)에서 꽃을 구경하고 돌아오다 큰바람을 만나다
허창의 달밤, 맥생의 운을 따라
16일 밤, 맥생 운을 딴 시
희천 자순이 오자마자 그가 선물한 시의 원운을 그대로 사용하여 지음
송자순귀리(送子循歸里) 두 수
주면민 소장 '샹구도'에 대한 글
성문이 열리다
결빙교
위경사
곡물 수송병
4륜차
둔겐지재의 시를 읽고 서이부에게 보내다 - 잉주
잡시 두 편
지소천
왕에루(王萼樓)의 작은 초상화에 씌운 글
전왕손행
진만경(秦縵卿)을 무석(無錫)으로 보내며
대량(大梁)의 관청에서 희우(喜晤)를 만나고, 서남(瑞南)의 성창(星昌)이 시를 지어 감회를 표현하자, 곧바로 그를 관직이 있는 광동(粵東)으로 보냈다.
루왕릉
채계매를 고향으로 보내며